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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윤석열 그리고 반복되는 계엄의 역사 이재원 기자 2025-03-20 00:00:02

[한국미래일보=이재원 기자] 대한민국 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박정희와 윤석열 그리고 계엄이라는 단어가 한 문장에 놓이는 것은 결코 어색하지 않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공통적으로 강력한 권력 행사를 통해 국가 운영을 시도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의 그림자를 현재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까?


좌측부터 윤석열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의 계엄 정치, 군부의 철권 통치

박정희는 1961년 5.16 군사정변을 통해 정권을 잡은 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비상계엄과 긴급조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1972년 유신헌법을 제정하며 ‘국가 비상사태’를 명분으로 사실상 독재를 공고히 했다.


그의 대표적인 계엄 사례는 1979년의 부마항쟁 진압이었다. 부산과 마산에서 유신 체제에 반대하는 시민과 학생들의 시위가 확산되자, 박정희는 강경 대응을 지시하며 군을 동원했다. 그러나 계엄령 확대를 두고 내부 갈등이 심화되었고, 결국 10.26 사건으로 박정희는 최측근이었던 김재규의 총에 맞아 생을 마감했다.


윤석열과 계엄령 논란, 법과 원칙인가, 강경 대응인가?

윤석열은 법치를 강조하며 정치에 입문한 인물이다. 그러나 집권 후 여러 차례 강경한 공권력 행사를 보여주면서, 박정희 시대의 계엄 통치와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2022년 화물연대 파업 사태에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며 강경 대응한 것은 과거 계엄령의 경제적 버전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부의 개입이 공권력 강화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이며, 일부에서는 박정희 정권과의 공통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2024년 총선 이후 야당이 장악한 국회와의 대립이 극단적으로 치닫는다면, 윤석열 정부에서도 비상사태를 명분으로 한 강경 조치가 나올 가능성이 없지 않다.


반복되는 역사,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박정희 시대의 계엄 정치는 극단적 권력 집중과 통제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윤석열 정부가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공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강경 대응과 권위주의적 국정 운영이 어디까지 허용될 것인지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현재의 국민이라는 점이다. 박정희와 윤석열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 한국 사회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길을 찾을 것인가? 이 질문이야말로 우리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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