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래일보=이재원 기자] 지난 2023년 3월, 박진 전 외교부 장관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를 놓고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하며 물컵을 비유로 들었다. 당시 그는 한국이 양보한 만큼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으로 물컵이 점차 채워질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네이버 '라인'의 운영과 개발 주도권이 일본 측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상황을 지켜보며, 그 물컵이 채워지기는커녕 일본에게 통째로 빼앗긴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라인은 네이버가 만든 플랫폼으로, 전 세계 1억 8천만 명이 넘는 사용자를 보유한 글로벌 메신저 서비스다. 특히 일본에서는 국민 메신저로 자리 잡으며 시장점유율이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라인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서 일본 정부는 네이버의 운영 체계와 보안 문제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했고, 결국 네이버가 일본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형태로 상황이 정리됐다. 이에 따라 라인의 운영사인 라인야후(LY)는 한국 네이버 및 네이버 클라우드와의 모든 시스템 연계를 차단하며 일본 독자 운영체제로 전환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결정이 단순히 기업 간의 경영적 판단을 넘어, 국가 간 힘의 역학관계가 반영된 결과라는 점이다. 일본 정부가 철저한 보안 관리를 명분으로 네이버의 영향력을 배제하도록 요구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합당해 보이지만, 한국 정부와 기업 입장에서는 결코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한마디로 네이버가 일본에서 이뤄낸 기술적, 경제적 성과가 일본에게 고스란히 넘어간 셈이다. 한국의 플랫폼 기술력과 혁신이 일본의 규제와 요구에 속수무책으로 넘어가는 사례가 된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번 사태가 지난해 강제동원 배상 논란 당시 한국 정부가 보였던 외교적 양보와 맥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당시 제3자 변제안을 통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한 발 양보했다. 그러나 일본 측은 이에 걸맞은 '성의 있는 호응'을 보였는가. 적어도 이번 라인 사태를 보면 그 답은 부정적이다. 일본 정부는 자국의 이익과 보안 문제를 이유로 네이버의 주도권을 배제시키며, 결국 한국의 혁신적 자산을 자국 내로 끌어들이는 결과를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우리가 기대했던 외교적 '물컵 채우기'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을까? 오히려 우리가 채워온 물컵을 일본이 통째로 가져가는 것은 아닌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는 기업의 문제를 넘어 국가적 차원의 전략적 대응이 부족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부는 일본과의 협상에서 더욱 치밀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했어야 했다.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략적 산업 자산이 다른 나라의 압력으로 인해 손쉽게 넘어가는 상황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더 이상 물컵 비유로 국민을 안심시킬 때가 아니다. 외교와 기업의 미래는 철저한 대비와 전략적 사고를 통해 지켜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손에 들린 물컵은 절반이 아니라 완전히 비워진 채 일본의 손에 쥐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기업 모두 정신을 바짝 차리고 국가적 자산과 기업의 경쟁력을 지켜내기 위한 전략 마련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