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영화상 포스터
[한국미래일보=윤소윤 대학생 기자]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축제인 청룡영화상이 화려한 막을 내렸지만, 그 뒷맛은 개운치 않다. 화려한 레드카펫과 배우들의 수상 소감 뒤에 가려진 '영화인 홀대'와 '인기투표 논란'이 시상식의 권위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 얼굴 없는 스태프들, 설명 없는 시상
가장 뼈아픈 지적은 영화의 뼈대를 만드는 스태프들에 대한 처우다. 이번 시상식에서 각본상, 기술상, 미술상, 편집상 등 영화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핵심 부문의 시상은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지나갔다.
후보 소개는 영화 포스터 한 장을 화면에 띄우는 것으로 대체되었고, 정작 수상의 영예를 안은 스태프들은 현장에 초대받지도 못했다. 대리 수상조차 없이 화면 전환으로 넘어가는 모습은 영화를 위해 헌신한 이들에 대한 예우라고 보기 어려웠다.
해외 유수의 시상식과 비교하면 그 격차는 더욱 두드러진다. 미국의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의 경우, 각본상을 시상할 때 실제 시나리오 지문과 영화 속 구현 장면을 교차 편집해 보여주며 글이 어떻게 영상으로 탄생했는지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반면, 청룡은 기술적으로 세분화할 수 있는 항목들을 뭉뚱그려 시상했을 뿐 아니라, 해당 기술이 영화 속에서 어떤 미학적 성취를 이뤘는지에 대한 설명도 생략했다.
한 영화 비평 유튜버는 "배우와 스태프 간의 인건비 격차가 극심한 현실에서, 영화제에서조차 스태프들의 노고가 지워지는 것을 보면 허무함을 느낀다"며 "한국 대표 영화 시상식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배우를 제외한 영화인들의 공로는 철저히 배제됐다"고 꼬집었다. 이는 영화 팬들 사이에서 큰 공감을 얻으며 시상식의 지향점에 대한 의문을 남겼다.
◆ 심사위원 동점이면 '인기투표'?… 심사표 공개의 역설
시상식 다음 날 공개된 심사표는 공정성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주요 부문 수상자가 전문가의 심사가 아닌 '네티즌 투표' 한 끝 차이로 갈렸기 때문이다.
이번 청룡영화상 규정에 따르면 심사위원의 여덟 표와 네티즌 투표(유료) 결과가 한 표로 반영되어 최종 수상자가 결정된다. 이 룰이 이번 시상식의 주요 부문 결과를 뒤흔들었다.
감독상의 경우 박찬욱 감독(영화 '어쩔수가없다')과 우민호 감독(영화 '하얼빈')이 심사위원단 투표에서 동점을 기록했으나, 네티즌 표심이 박찬욱 감독에게 쏠리며 트로피의 주인이 결정됐다.
연기상 부문도 마찬가지였다. ▲남우주연상은 박정민('얼굴')과 현빈('하얼빈') ▲여우조연상은 박지현('히든페이스')과 염혜란('어쩔수가없다')이 팽팽히 맞섰으나 결국 팬덤과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었다. 특히 여우주연상의 경우, 손예진('어쩔수가없다')과 이혜영('파과')이 2차 재투표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으나, 이 역시 네티즌 표가 손예진을 선택하며 3차 재투표로 이어졌다.
심사표 공개는 투명성을 위한 장치였으나, 결과적으로 "전문성 있는 심사가 인기투표에 의해 무력화됐다"는 비판을 낳았다. 일각에서는 "이럴 거면 인기상과 본상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번 시상식에서는 청정원 인기스타상 수상자가 그대로 남녀주연상을 휩쓰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인기상'과 연기력으로 평가받아야 할 '본상'의 수상자가 완벽히 겹치는 결과는, 부부 동반 수상이라는 아름다운 그림이었지만 권위 있는 영화 시상식을 한 편의 '블랙 코미디'로 만들었다는 뼈아픈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국 영화 100년의 역사를 기념하고 격려해야 할 자리가, 특정 직군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팬덤의 화력에 휘둘리는 모양새가 되면서 선정 기준을 대폭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영화는 '배우'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화려한 조명이 꺼진 뒤, 남는 것은 무엇인가. 올해 청룡영화상은 우리에게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영화(Motion Picture)는 종합 예술이다. 배우의 연기는 감독의 연출, 작가의 펜 끝, 조명과 미술, 편집의 리듬 위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그러나 이번 시상식은 마치 영화가 배우들의 전유물인 양, 스태프들을 병풍 취급했다. 그들이 흘린 땀방울이 화면 뒤로 사라질 때, 한국 영화의 질적 성장을 견인해 온 '장인 정신'도 함께 외면받았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수상자 선정 방식이다. 물론 대중의 사랑은 영화의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권위 있는 시상식의 본질은 흥행 성적이나 팬덤의 크기로는 재단할 수 없는 '영화적 성취'를 전문가의 눈으로 발굴하고 치하하는 데 있다. 심사위원들이 치열하게 고민해 내놓은 결과가 네티즌 클릭 수에 의해 엎어지는 구조라면, 굳이 전문 심사위원을 위촉할 이유가 있을까.
박찬욱 감독의 미학이나 손예진 배우의 연기력이 훌륭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수상이 오롯이 그들의 압도적인 실력 때문이 아니라 '인기투표' 덕분이었다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수상자에게도 영광스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청룡영화상이 진정한 '한국의 오스카'가 되려면, 레드카펫 위의 화려함보다 스크린 뒤의 땀방울을 먼저 닦아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단단한 심사 기준을 세워야 한다. 배우만 남고 영화는 사라진 시상식, 이제는 바뀔 때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