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래일보=이재원 기자] 내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사실상 ‘슈퍼사이클’ 초입에 들어간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인공지능(AI) 서버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D램 수요가 폭발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국내 메모리 업체들이 글로벌 공급 부족 국면의 최대 수혜자로 떠오른다는 분석이다. 이미 일부 제품은 2026년 물량까지 선(先)계약이 끝났고, 가격은 2027년까지 강세를 이어갈 것이란 관측이 잇따른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는 최근 보고서에서 2026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 규모가 9,754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2025년 전망치 대비 약 26% 증가한 규모로, 사실상 ‘1조달러 시대’ 목전까지 온 셈이다. 이 가운데 성장 엔진으로 지목되는 게 바로 메모리다. 주요 증권사와 시장조사 기관들은 2025년 4분기 DRAM 계약가격이 전 분기 대비 10%대 후반, 2026년 1분기에도 10%대 중반 추가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고, 낸드 플래시 역시 내년까지 두 자릿수 상승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일본계 투자은행 노무라는 2026년 범용 D램과 낸드 가격 연간 상승률 전망치를 각각 57%, 65%로 상향 조정하며 “메모리 공급 타이트 현상은 2027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SK하이닉스는 이미 HBM 시장의 ‘절대 강자’로 자리 잡았다. 엔비디아 AI 가속기에 들어가는 HBM3·HBM3E 대부분을 공급하면서, 2026년 생산분 HBM 물량을 올 상반기 중 계약으로 사실상 채우겠다는 목표를 세운 상태다. 실제로 회사는 2025년 초부터 2026년 HBM 전량을 상반기 내 수주하는 전략을 가동했고, 최근에는 미주 지역에 HBM 전담 태스크포스를 두는 등 조직 개편도 단행했다. SK하이닉스는 실적 발표에서 “HBM 공급 부족은 최소 2027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며 대규모 증설 투자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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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전통 강자’답게 DRAM과 낸드, HBM을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로 반격에 나선다. 한때 HBM 주도권을 SK하이닉스에 내줬지만, 범용 D램 가격 급등과 함께 4분기 DRAM 시장 점유율 1위 탈환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왔다. 삼성은 차세대 HBM3E·HBM4를 앞세워 내년 HBM4 생산분을 사실상 ‘완판’했다는 해외 보도도 나왔다. 회사는 2026년부터 미국 텍사스 테일러 공장 가동과 함께 2나노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 HBM4 베이스다이 양산에 집중해 AI 서버용 메모리·파운드리 시장을 동시에 겨냥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양대 메모리 업체의 ‘기대 실적’도 빠르게 부풀고 있다. 최근 국내외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내년 영업이익 합계가 200조원 안팎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AI 서버 1대에 들어가는 D램·HBM 탑재 용량이 기존 대비 몇 배 수준으로 늘어나면서, 하이퍼스케일러(대형 클라우드 업체)들이 “가격과 무관하게 물량을 먼저 확보하겠다”는 태도로 선주문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중국 빅테크는 물론, 엔비디아·AMD·인텔 등 칩 설계사들도 메모리 확보전을 벌이고 있다.
다만 메모리 업황 회복이 곧장 모든 산업에 ‘호재’만 되는 건 아니라는 경고도 있다. AI 열풍 속에서 HBM·서버 D램 생산에 라인이 쏠리면서, PC·스마트폰용 범용 메모리는 구조적 공급 부족에 직면해 있다. 이미 일부 아시아 유통 시장에선 소비자용 메모리 모듈과 SSD 재고가 빠르게 줄어들어, 리테일 업자가 물량을 쪼개 판매하거나 1인당 구매 수량을 제한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메모리 가격 급등이 장기화될 경우 완제품 가격 인상과 IT 수요 위축,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호황’과 ‘나쁜 호황’을 가르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내년 메모리 시장의 키워드는 ‘AI’와 ‘공급 제한’이다. SK하이닉스는 HBM으로, 삼성전자는 범용 D램과 HBM을 아우르는 양날의 검으로 슈퍼사이클 한가운데를 파고드는 모양새다. 투자자 입장에선 단기 가격 급등보다는, 2027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구조적 호황 속에서 누가 더 안정적으로 증설·수율·원가를 관리하느냐가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메모리 업계의 내년 성적표는, K-반도체가 AI 시대 ‘기본 인프라’로서 어떤 존재감을 확보할지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