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배경에는 주차별로 제공되는 한정 특전이 팬덤 소비를 자극하는 구조가 있다.
극장은 단순한 관람 공간을 넘어, 팬들이 콘텐츠를 ‘소유’하고 경험을 수집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국미래일보=배정원 대학생 기자]
최근 몇 년간 한국 극장가에서는 유독 눈에 띄는 장면이 반복된다. 개봉한 지 한참 지난 영화가 여전히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이미 영화를 본 관객들이 또다시 극장으로 향한다. 이른바 ‘N차 관람’ 현상이다.
그 중심에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 <귀멸의 칼날>, <스즈메의 문단속>, 그리고 <체인소 맨> 등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있다. 이들은 개봉 직후 반짝 흥행에 그치지 않고, 몇 주에서 길게는 몇 달에 걸친 ‘롱런’을 만들어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주) NEW
대표적으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3040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며 약 490만 명을 동원, 당시 역대 일본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다. 최근의 <체인소 맨: 레제편> 역시 개봉 3개월이 지난 시점까지 상위권을 유지하며 여전히 ‘현재진행형’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이 현상을 단순히 ‘작품이 좋아서’라는 말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미 여러 번 영화를 본 관객들이 아침부터 극장으로 향하고, 특정 날짜에 맞춰 예매 전쟁을 치르는 모습은 단순한 호평 이상의 무언가를 암시한다. 목적은 분명하다. 오직 극장에서만 받을 수 있는 ‘특전’을 얻기 위해서다.
팬덤을 움직이는 강력한 동력, '특전'
관객들이 그토록 얻고자 하는 특전이란 보통 영화 개봉 주차별로 극장에서 한정 배포되는 굿즈를 말한다. 관람 티켓을 인증해야만 받을 수 있으며, 수량이 한정적이라 관객들은 상영 시간표보다 ‘특전 일정표’를 먼저 확인하는 데 익숙해졌다.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순
이에 발맞춰 국내 멀티플렉스 3사는 각자의 시그니처 굿즈를 브랜드화하며 팬덤 소비를 체계화했다. 메가박스의 ‘오리지널 티켓’은 영화의 핵심 비주얼과 넘버링을 담아 수집 욕구를 자극하며, CGV의 ‘TTT(That’s The Ticket)’는 디자인 티켓을 넘어 하나의 공식 컬렉션으로 자리 잡았다. 롯데시네마 역시 영화의 미감을 강조한 ‘아트카드’를 통해 마니아층을 공략한다. 이 외에도 비주얼 보드, 특별 만화책, 아크릴 스탠드 등 특전의 종류는 날로 세분화되고 있다.
OTT 시대의 역설: '만질 수 있는 경험'
그렇다면 왜 관객들은 이토록 특전에 열광할까. 이 현상의 이면에는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팬덤 소비의 구조적 변화가 있다.
OTT와 스트리밍의 확산으로 영화는 더 이상 희소한 콘텐츠가 아니다. 언제든 다시 볼 수 있는 디지털 라이브러리 속에서 ‘소유’의 개념은 희미해졌다. 역설적으로 이 환경 속에서 팬들은 ‘손에 잡히는 것’을 갈망하게 됐다. 화면 속 데이터가 아닌, 물리적 실체를 통해 자신의 취향과 애정을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전은 이 욕구를 정확히 파고든다. 포스터 한 장, 카드 한 세트는 단순한 종이나 플라스틱이 아니다. “나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다”, “나는 이 콘텐츠의 찐팬이다”라는 물리적 선언이다. 여기에 “이번 주가 아니면 못 받는다”는 희소성이 더해지며 관객의 발길을 재촉한다. 이제 N차 관람은 단순한 재감상이 아니라, 특전 획득을 통해 팬덤의 흐름에 동참하는 적극적인 행위가 되었다.
<체인소 맨>이 보여준 팬덤 비즈니스의 정석
체인소 맨 레제편, 소니 픽처스 코리아
이 구조를 가장 선명하게 증명한 사례가 바로 <체인소 맨: 레제편>이다. 이 작품은 폭발적인 오프닝 스코어 대신, 주차별 특전 일정에 맞춰 관객 수가 계단식으로 반등하는 독특한 롱런 그래프를 그렸다. 새로운 굿즈가 공개될 때마다 관객 수가 되살아나는 패턴은 관람 수요가 ‘획득 목표’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동되는지를 보여준다.
확고한 원작 팬층에게 영화 관람은 스토리를 확인하는 것을 넘어, 팬으로서의 자격을 갱신하는 의식과도 같다. 결과적으로 <체인소 맨>의 흥행은 ‘많은 사람이 한 번 보는 영화’보다 ‘정해진 사람들이 여러 번 보는 영화’가 현재 극장가에서 더 강력한 매출 동력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극장, 관람을 넘어 ‘소유’의 공간으로
굿즈, 팬덤, 그리고 반복 관람. 이 세 요소가 맞물린 지금의 극장가는 분명 과거와 다르다. 한때 마이너 취향으로 분류되던 일본 애니메이션이 주류 흥행작으로 올라선 것은, 불특정 다수를 겨냥하기보다 명확한 팬층을 정확히 조준하는 전략이 얼마나 유효한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이제 한 번 보고 끝나는 휘발성 콘텐츠가 아니다. 극장은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을 넘어, 팬들이 작품을 물리적으로 소유하고 경험을 수집하는 공간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관객은 변했고, 극장은 그 변화에 가장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장소가 되었다.
그래서 다음에 정말 마음에 드는 영화가 개봉한다면, 한 번쯤은 그 영화의 특전을 함께 떠올려봐도 좋겠다. 어쩌면 포스터 한 장, 카드 한 장은 그 영화를 보던 순간의 감정과 시간을 가장 의미 있는 형태로 붙잡아 두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기억들을 모아 인생을 살아간다.
공동 취재: 이의영, 김연호, 배정원 대학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