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래일보=문아영 대학생 기자]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오늘 18일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앞두고,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 속 문장들이 다시금 역사적 상흔을 돌아보게 한다. 1980년 5월, 신군부의 총칼 아래 철저히 고립되고 짓밟혔던 광주는 46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이름으로 남아있는가.
이미지 캡션=5·18민주화운동기록관(1980. 5. 19. 금남로 시위 현장 ©조광흠 )
국가보훈부는 18일 오전 11시, 광주광역시 5·18민주광장에서 ‘오월, 다시 광장을 품다’라는 주제로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거행한다. 5·18민주유공자 및 유족, 각계 대표, 학생 등 3,000여 명이 참석하는 이번 행사는 특히 1980년 당시 시민군의 최후 항전지였던 옛 전남도청의 원형 복원 및 개관을 기념하는 자리로 꾸려진다.
고(故) 윤상원 열사의 조카 이승주 님 등이 참여하는 국기 게양식을 시작으로, 5월 27일 도청 마지막 방송을 지켰던 박영순 님의 낭독, 극단 ‘토박이’의 <오월의 기억> 공연, 광주시립발레단의 퍼포먼스 등이 이어지며 그날의 연대와 희생을 기린다. 오늘 행사의 배경이 되는 옛 전남도청은 46년 전, 평범한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켜낸 상징적인 공간이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광주에 공수부대를 투입해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집단 발포를 감행했다. 군부의 폭력 앞에서도 광주는 질서와 연대를 보여주었다. 광주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상황 속에서도, 시민들은 스스로 총을 들고 자위권을 행사하는 한편 헌혈 행렬을 잇고 주먹밥을 나누었다. 단 한 건의 약탈도 발생하지 않은 이 기간은 해외 언론조차 감탄한 성숙한 민주주의의 표상이었다. 5월 27일 새벽 4시,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의 무력 진압에 도청 일대에서 17명의 시민군이 산화하며 열흘간의 항쟁은 막을 내렸지만, 이들의 피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굳건한 도화선이 되었다.
1997년 대법원은 신군부의 행위를 내란죄 및 헌정질서 파괴 범죄로 단죄하며, “국헌문란 행위에 항의한 광주시민들은 주권자인 국민이 헌법 수호를 위하여 결집을 이룬 것”이라고 판결했다. 즉, 5·18은 주권자가 직접 헌법을 지켜낸 거룩한 헌법 수호 운동임이 법적으로 확립된 것이다. 또한 2011년 5·18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며 인류가 보편적으로 기념해야 할 인권의 자산으로 인정받았다.
이러한 오월 광주의 희생은 단순한 비극을 넘어 헌법에 새겨야 할 명백한 당위성을 지닌다는 정치권과 국민들의 의견이 꾸준히 나오고 있으며, 최근 5·18 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기 위한 개헌 시도가 있었으나 국회에서 투표 불성립으로 무산되었다.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이번 기념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오월 광주의 희생과 시민들의 굳건한 연대 위에 서 있다"며 국민 통합을 강조한다.
46년 전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소중한 가치들을 지켜낸 광주. 남겨진 삶이 슬픈 장례식이 아닌 흔들림 없는 민주주의로 이어지도록 국가와 정치권이 실천으로 화답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