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검색
술 소비 줄고, 말랑이 소비 늘었다 … 2030 스트레스 해소법의 변화 최영주 대학생 기자 2026-06-18 15:05:01
술잔을 내려놓은 2030세대의 손에 '말랑이'가 쥐어지고 있다. 최근 주류 소비가 10분기 연속 감소세를 기록하는 반면, 저렴한 가격으로 즉각적인 위로를 주는 촉감 완구 '말랑이' 시장은 이례적인 호황을 맞이했다. 언뜻 달라 보이는 두 현상의 이면에는 집단 중심의 회식 문화에서 벗어나 개인의 스트레스를 빠르게 해소하려는 새로운 소비 심리가 흐르고 있다.

[한국미래일보=최영주 대학생 기자] 퇴근 후 회식 자리로 향하던 발걸음이 다이소와 아트박스로 옮겨가고 있다. 손에 술잔을 쥐던 자리를 '말랑이'가 대신하는 모습이다. 통계로 확인되는 술 소비 감소세와 거리 풍경에서 체감되는 말랑이 열풍은 서로 무관한 현상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같은 흐름이 자리하고 있다.


창신동문구완구시장에 진열된 완구류들(출처 @seoul_thehotple 인스타그램)


술 소비, 10분기 연속 내리막

국내 주류 소비는 분기마다 기록을 갈아치우며 줄고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과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가구당 월평균 주류 실질 소비지출은 1만3천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9.0% 감소했다. 통계를 재집계하기 시작한 2019년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이다. 주류 실질 소비지출은 2023년 4분기부터 10분기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물가 영향을 포함한 명목 지출 기준으로도 7.5% 줄어 8분기 연속 감소를 기록했다. 연령대별로는 50대 가구의 감소폭이 10.2%로 가장 컸고, 60세 이상(6.9%), 39세 이하(5.7%), 40대(5.1%) 순으로 나타나 전 연령대에서 동시에 술이 줄고 있는 모습이다.


이 같은 흐름은 출고량 데이터에서도 확인된다. 국세청에 따르면 국내 주류 총 출고량은 2022년 326만8,623kL에서 2023년 323만7,036kL, 2024년 315만1,371kL로 2년 연속 줄었다. 코로나19 이후 잦은 회식 문화가 옅어지고 건강과 자기관리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확산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최근에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퍼지며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문화가 주목받고 있고 이에 맞춰 주류 업계도 저도주·무알코올 제품 라인업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빈자리를 채운 말랑이

같은 시기, 전혀 다른 품목이 소비자의 손을 채우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아트박스 이대점은 1층부터 지하 1층까지 매장 곳곳을 말랑이로 채웠고, 제품을 연신 만져보며 촉감을 비교하는 소비자들로 북적인다. 한 매장 방문객은 지난주 구매한 말랑이의 촉감이 좋아 다시 찾아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가격대도 진입장벽이 낮다. 말랑이는 1,000원대부터 구매할 수 있어 큰 지출 없이도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말랑이의 영향력은 거리 상권의 지형까지 바꿔놓았다. 트렌드 미디어 캐릿에 따르면 지난 5월 '동묘' 검색량이 핫플레이스의 대명사였던 '성수' 검색량을 앞질렀다. 동묘 인근 창신동 완구거리가 다양한 말랑이를 파는 성지로 입소문이 나면서 Z세대 발길이 몰린 결과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감지된다. 미국 생활용품점 파이브빌로우는 올해 1분기 순매출이 전년 대비 32.5% 증가했는데, 회사 측은 그 핵심 요인으로 만두 모양 랜덤 스퀴시 굿즈의 인기를 꼽았다.


같은 뿌리, 다른 소비

두 현상을 연결하는 키워드는 '개인화된 스트레스 해소'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이하 이 교수)는 “말랑이가 불안한 감정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측면이 있으며 키링처럼 소지하며 필요할 때마다 만질 수 있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역할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경기가 불확실하고 삶의 피로감이 커질수록, 비교적 저렴한 제품에서 만족감을 얻으려는 심리가 강해진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음주 문화 변화에 대해서도 비슷한 진단을 내놓았다. 이 교수는 2030세대가 집단 중심 문화보다 개인의 취향과 경험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며, 음주 역시 관계 유지의 수단에서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결국 술이 줄어든 자리를 말랑이가 채운 것이 아니라 '취하기 위한 소비'에서 '나를 다독이기 위한 소비'로 무게중심이 옮겨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가성비 위로, 새로운 소비 문법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가 일시적 유행을 넘어선다고 본다. 술을 양보다 질, 그리고 술을 둘러싼 공간과 경험으로 즐기려는 흐름과, 적은 비용으로 즉각적인 위로를 얻으려는 말랑이 소비는 같은 소비 문법 위에 서 있다. 술잔 대신 말랑이를 쥔 2030세대의 다음 소비처는 어디일까.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나를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빠르게 위로해 주는 곳이다. 2030의 소비는 '얼마나 나에게 맞는지'를 기준으로 움직이고 있다.

오피니언

주소를 선택 후 복사하여 사용하세요.

뒤로가기 새로고침 홈으로가기 링크복사 앞으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