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래일보=김서현 대학생 기자]
어도비 홈페이지, 크리에이터 툴킷 리포트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 어도비에서 '크리에이터 툴킷 리포트(Creators' Toolkit Report)'를 발표했다. 크리에이터 1만6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86%가 "AI를 활용해 기존에는 제작할 수 없었던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됐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글쓰기, 이미지 제작, 음악 작곡, 영상 구성 등 과거 숙련된 창작자의 전문 영역으로 여겨졌던 작업이 이제는 몇 줄의 프롬프트만으로 가능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인간을 닮아갈수록, 역설적으로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은 더 선명해지고 있다. AI가 정답에 가까운 결과물을 빠르게 내놓는 시대, 인간은 무엇으로 창작의 주체임을 증명할 수 있는가.
■ AI가 80%를 만든다면, 인간은 마지막 20%를 증명한다
지난 24일 열린 '제5회 사람과 디지털포럼' 현장 사진
AI 도구의 확산은 콘텐츠 제작의 속도를 극적으로 높였다. 문제는 속도가 빨라진 만큼 결과물의 평균 수준도 빠르게 평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4일 열린 ‘제5회 사람과 디지털포럼’에서 홍성준 뱅크샐러드 이사는 스타트업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를 “제작 시간이 압축되면서 무게중심이 만드는 시간에서 결정하는 시간으로 이동했다”고 설명했다. AI가 80% 수준의 결과물은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게 된 만큼, 인간의 역할은 마지막 20%를 채우는 데 있다. AI 도구의 발전으로 기획, 디자인, 개발 등 직무 간 경계가 옅어지고 있다고도 짚었다. 일정 수준의 결과물을 만드는 능력보다, 여러 가능성 중 최선의 방향을 고르는 판단력과 융합적 사고가 더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광운대학교 AI미디어솔루션학과 이희대 교수는 이 같은 변화를 ‘휴먼 인 더 루프(Human-in-the-loop)’ 원칙의 확장으로 설명했다. 그는 “인간의 최종 개입이라는 원칙은 창작 영역에서도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된다”며 “창작에서의 개입은 공장의 품질 검수와 달리 작품의 방향성과 미학적 판단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AI 결과물을 승인하는 수준의 개입과, 기획·수정·재해석을 반복하는 개입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설명이다.
■ 인간 창작자는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 인간 창작자는 자신이 어떤 관점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어떤 기준으로 AI를 활용하며, 무엇을 책임질 수 있는지까지 설명해야 한다. 이는 창작자가 곧 자신의 관점과 취향을 지속적으로 축적하는 하나의 브랜드가 된다는 의미다. 창작자의 시행착오와 불완전한 감각은 오히려 콘텐츠의 차별점이 될 수 있다.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윤석암 교수는 AI 시대 인간 창작자의 가치를 결과물의 형식보다 그 안에 담긴 맥락에서 찾았다. 윤 교수는 “낙서풍, 불완전함, 손맛 같은 표현 스타일은 데이터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AI에 의해 빠르게 복제된다”며 “인간미도 AI가 재현 가능한 스타일 중 하나로 더 이상 차별화 요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인간 창작자의 가치는 콘텐츠의 보이는 형식이 아니라 콘텐츠를 관통하는 맥락에 있다”며 “AI가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은 프롬프트에 명령을 하기 전의 인간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인간 창작자의 저자성(Authorship)을 브랜드 자산화하는 이유도 인간 창작자들의 고유한 상상력이 AI 시대에도 유효한 가치로 남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 'AI 대 인간' 이분법을 넘어… 창작의 기준은 '인간의 개입'
AI가 만든 콘텐츠와 인간이 만든 콘텐츠를 기술적으로 구분하기 어려워질수록, 신뢰는 결과물 자체가 아니라 결과물 바깥의 정보에서 형성된다. 특히 저작권 문제는 AI 시대 창작자의 역할 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정진우 선임연구원은 “우리 저작권법상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어야 한다”며 “생성형 AI가 인간의 창작적 기여 없이 기계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물 자체는 저작권법상 저작물로 인정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AI를 활용했다는 이유만으로 결과물 전체가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며, 최종 결과물 안에 인간의 창작적 표현이 포함됐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생성형 인공지능 활용 저작물의
저작권 등록 안내서
예를 들어 인간이 작성한 문장이나 구성한 줄거리, 편집한 장면, 배열한 요소 등에 창작적 개성이 드러난다면
그 부분을 중심으로 보호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 반면 단순한 명령어 입력에 그치는 경우에는 저작권 보호를
인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는 지난 해 6월 「생성형 인공지능 활용 저작물의 저작권 등록 안내서」를 발행해,
AI 활용 결과물의 등록 가능성을 인간의 창작적 기여
여부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기준을 안내하고 있다.
■ 인간 창작을 지키는 새로운 기준
인간 창작자가 도태되지 않으려면 단순히 “AI보다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주문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간의 창작적 개입을 확인할 수 있는 저작권 보호 체계와 AI 사용 책임의 기준을 세우는 제도적 논의가 함께 필요하다.
이희대 교수는 사후 규제 중심의 현행 체계만으로는 AI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며, 기술 발전에 따라 기준을 주기적으로 갱신하는 ‘적응형 규제’가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창작자, 플랫폼, AI 개발사가 함께 참여하는 다자 거버넌스 모델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단순 프롬프트 입력은 창작적 기여로 보기 어렵지만, 여러 차례의 방향 조정과 편집·재구성을 거친 결과물은 인간의 창작적 판단이 실질적으로 반영된 것”이라며 “창작 과정에서 인간이 내린 판단의 횟수와 질을 추적할 수 있는 ‘창작로그’ 같은 장치가 향후 저작권 판단의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AI 홍수 속에서 창작자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을 빨리 생산하는 능력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상상하고 그 방향에 책임지는 능력이다.
공동 취재: 황하영, 김서현, 고하경 대학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