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원 기자
[한국미래일보=이재원 기자] 윤석열 정부 시기, 내란 음모 혐의로 기소된 노상원 전 육군 정보사령관에게 대통령 경호처의 최고 보안 통신장비인 ‘비화폰’이 지급됐던 사실이 드러나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비화폰은 원칙적으로 대통령, 국방부 장관, 경호처장 등 극소수 고위직에만 제공되는 군사급 보안 통신장비로, 민간인이 사용한 전례는 사실상 처음이다. 특히 그 지급 경위와 사용 내역이 경호처 내부에서도 파악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가 보안 체계의 구멍이 드러났다는 비판이 나온다.
JTBC 단독보도에 따르면 노상원 전 사령관은 2024년 3월부터 2025년 1월까지 약 10개월간 대통령 경호처에서 제공한 비화폰을 실제로 사용했다. 경찰이 확보한 통화 내역에는 비화폰을 통한 주요 인물들과의 교신이 포함되어 있으며, 사용자는 노상원이 맞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해당 비화폰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명분으로 노 씨에게 전달되었는지조차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비화폰은 통신 내용이 실시간 암호화되어 도·감청이 불가능한 장비로, 통상 대통령 및 국가안보 핵심 인사들만이 사용하는 장비이다. 이 장비가 노상원에게 전달된 경로는 김성훈 당시 대통령 경호처 차장의 비서관이 중간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김 전 차장은 해당 사실을 “전혀 모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호처 내부에서도 해당 지급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체계적 통제와 관리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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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원 씨는 육군 정보사령부를 퇴직한 후 민간인 신분이었으며, 현재는 '12·3 사태'로 알려진 비상계엄 관련 내란 음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사건은 윤석열 정권 퇴진을 막기 위한 비상계엄 검토 및 실행 모의 의혹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노상원은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연결 고리로 지목되고 있다. 그가 사용한 비화폰은 대통령실, 국방부, 청와대 상황실 등과 직접 연결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만약 이 장비를 통해 실제 지휘 체계에 접근하거나 연락을 취했다면, 이는 국가 시스템의 심각한 위협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이번 사건이 중대한 것은 ‘민간인에게 고위급 보안 장비가 어떻게, 왜 지급되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 때문이다. 비화폰은 단순한 고성능 전화기가 아니라, 군사·국가안보 수준의 통신망에 접근할 수 있는 열쇠다. 이 장비가 적절한 절차 없이 유출되었거나, 사적으로 사용되었을 경우 그 파장은 단순한 보안 사고를 넘어 국가 시스템의 신뢰를 훼손하는 일이 된다. 대통령 경호처의 보안 시스템이 구조적으로 허술했던 것인지, 혹은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한 사적 권력 사용의 일환이었는지 여부는 향후 수사를 통해 규명되어야 한다.
경찰은 현재 비화폰의 통화 기록 분석에 착수했으며, 대화 상대, 빈도, 시기 등 통신 내용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혐의를 규명 중이다. 특히 ‘누가’ 노상원에게 비화폰 지급을 승인했는지, 경호처 상급자는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가 수사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역시 이 사건의 경위에 대해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인 해명이나 입장 발표는 없는 상태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기강 해이로 치부할 수 없는 중대 사안이다. 비화폰 지급은 통상 최고 기밀에 해당하며, 민간인에게 그것도 사적인 목적이 의심되는 인물에게 지급된 사실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다. 국가안보와 직결된 통신장비가 내부 검증 없이 유출될 수 있었던 현실은 경호처와 정부 조직 전반의 관리 체계 부재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국가의 보안 장비는 그 자체로 물리적 장비가 아니라 신뢰의 체계다.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것은 단지 한 대의 전화기가 아니라, 권력 주변에서 오간 비공식적 권한과 통제 불능의 신호다. 국정의 정상화와 제도적 복원을 위해서는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개선이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