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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래일보=이용준 기자] 대통령의 분노는 사사로운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국가를 대표하는 권위의 표현이자, 국민이 위임한 정의의 대변이어야 한다. 최근 윤석열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의 각각의 '격노'와 '분노'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두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국가 리더십의 철학과 태도를 가늠하게 하는 거울이 되었다.


과거 해병대 채 상병의 순직 사건을 수사하던 박정훈 대령은 사단장 등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중간 수사결과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다. 이후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하느냐”며 격노했다고 전해진다. 해당 발언이 당시 해병대사령관을 통해 박 대령에게 전달되며, ‘VIP 격노’는 수사 외압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김 전 사령관은 이를 부인했지만, 최근 특검 수사에 따르면 당시 대통령실 인사들이 윤 전 대통령의 분노를 직접 목격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한다.


왼쪽부터 이재명 대통령(대통령실), 윤석열 전 대통령(연합뉴스)

반면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국민들이 죽어가는 엄혹한 현장에서 음주 가무를 즐기거나 그 대책 없이 행동하는 정신 나간 공직자들에 대해서는 아주 엄히 단속하기를 바랍니다”라며 강한 어조로 지방자치단체장을 질타했다. 해당 발언은 경기북부와 강원도 지역의 집중호우로 시민 피해가 속출하던 날, 야유회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던 백경현 구리시장에 대한 것으로 해석됐다. 백 시장은 결국 사과문을 발표하고 고개를 숙였다.


두 분노는 모두 ‘격노’라 불릴 수 있는 강한 감정의 표현이지만, 그 방향과 맥락, 결과는 전혀 달랐다. 윤 전 대통령의 격노는 비공식 회의에서, 국민이 아닌 ‘자신의 부하’가 윗선의 책임을 지적한 것에 대한 불쾌감으로 표출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그것은 정의를 묻는 목소리를 짓누르는 방식의 분노였고, 결과적으로 군 수사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는 외압으로 작용했다.


반면 이재명 대통령의 분노는 공식 국무회의라는 투명한 공간에서, 국민의 생명을 외면한 공직자의 무책임에 대한 경고로 드러났다. 이 분노는 국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감정이었고, 책임 공직자에게 자성과 개선을 촉구하는 공적 메시지였다. 감정의 대상도 자신의 권위를 향한 도전이 아닌, 시민의 안전을 등한시한 행위였다.


물론 대통령의 분노가 항상 옳은 방향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어디서, 누구를 향해, 왜 분출되었는지를 보면 그 대통령이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분노는 군의 명예, 지휘계통의 위계질서를 중시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 장병의 죽음과 진실을 규명하려는 수사단장의 노력이 묵살됐다면, 그것은 공권력의 오남용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경우는, 자칫 보여주기식일 수 있다는 비판의 여지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그 분노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행정 원칙을 되짚는 데 쓰였다. 그 결과 구리시장의 공개 사과와 대국민 약속이라는 결과도 이끌어냈다.


우리는 대통령에게 완벽한 신을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공적 분노는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그 표현의 방식 또한 헌법적 책무와 책임 안에 머물러야 한다. 권력을 향한 충성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권력을 맡긴 국민을 외면한 자들을 향한 분노가 되어야 한다.


윤 전 대통령의 격노가 비공개 회의 속 전달된 정치적 압박이라면, 이재명 대통령의 분노는 공개 회의에서 공직 사회에 대한 경고로 작동했다. 이는 단순한 분노의 스타일 차이가 아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는가, 그 권위가 누구를 위해 쓰이는가를 가늠하게 해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대통령의 자리는 감정이 절제되어야 하는 자리지만, 때때로 분노는 국정을 움직이는 중요한 신호가 된다. 그러나 그 분노가 정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공익’이라는 뿌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뿌리를 잃은 분노는 독단이고, 그 뿌리를 지킨 분노는 정의가 된다.


결국, 대통령의 분노는 그가 누구를 위한 대통령인가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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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7-22 18: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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